-
목차
조경학 이론으로 분석하는 전이공간 개념의 진화
전이공간(Transitional Space)의 정의와 조경학적 해석
전이공간(transitional space)은 두 개 이상의 서로 다른 성격의 공간을 잇는 매개적 장소로 정의된다. 이는 건축과 도시계획, 조경학에서 모두 중요하게 다뤄지는 개념이며, 인간의 행동, 감성, 환경 인식이 교차하는 지점으로 기능한다. 조경학적으로는 실외공간과 실내공간, 자연공간과 인공공간, 공공영역과 사적영역을 부드럽게 연결하는 공간 유형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전이공간은 경계의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물리적·심리적 연속성을 확보하는 매개장소로 작동하며, 환경심리학(environmental psychology), 이용자 경험(user experience), 경관생태학(landscape ecology) 등 다양한 이론과 연결되어 분석된다.
Norberg-Schulz의 장소정신(Genius Loci) 이론에 따르면, 장소의 의미는 공간 자체가 아닌 인간의 인지적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은 전이공간이 단순한 통로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장소성과 상호작용하는 중요한 경관 장치임을 시사한다. 또한, Christian Norberg-Schulz는 전이공간을 “존재와 존재의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으로 간주하며, 조경 설계 시 전이공간의 구조적 형태뿐 아니라 심리적 인지 요소까지 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Kevin Lynch는 『The Image of the City』에서 도시 환경에서의 이미지성과 구조 인지를 위한 요소로 edge(경계), node(결절점), path(경로) 등을 제시했으며, 전이공간은 이 요소들을 연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연결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예컨대, 광장과 거리, 정원과 건축물 사이의 마당, 혹은 벤치와 나무 그늘이 있는 보행길의 일부는 모두 전이공간으로 해석될 수 있다.
조경학에서 전이공간의 중요성은 생태적 연결성(ecological connectivity)과도 연결된다. 특히 녹지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생태축(ecological corridor) 또는 패치-매트릭스-모자이크 모델에서의 매트릭스(matrix) 개념은 도시 내부의 이질적 공간 간 연결을 위해 전이적 구조가 얼마나 필수적인지를 시사한다. 이는 단순한 경계 완화가 아니라 생태적 순환과 환경적 회복력을 실현하는 기능적 요소로 전이공간을 재해석하게 만든다.
조경학 기반 전이공간의 유형 분류와 기능 분석
전이공간의 유형별 특성과 공간적 작동 메커니즘
전이공간은 형태적 구성에 따라 다양한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반실내공간(semienclosed space), 매개 공간(intermediate space), 시각적 전이공간(visual threshold), 기능적 연계 공간(functional linkage) 등으로 세분화된다. 이러한 분류는 각각의 공간이 사용자에게 제공하는 경험적 차원, 기후 반응, 생태 통합성에 따라 달라진다.
표: 전이공간 유형과 조경학적 기능 비교
전이공간 유형 주요 특성 적용 예시 조경학적 기능 반실내공간 부분 개방된 구조, 기후 완충 현관, 캐노피 하부 온도 완충, 쉼터 기능 매개 공간 내부와 외부 연결 경로 정원-건축 사이 마당 물리적 이동 및 시선 유도 시각적 전이공간 시야의 점진적 개방 또는 차단 스크린 식재, 펜스 심리적 안정감, 시각 흐름 조절 기능적 연계 공간 다양한 행위 연결 지원 산책로, 벤치 주변 커뮤니티 활동, 휴식 제공 Christopher Alexander의 『A Pattern Language』에서도 전이공간의 패턴은 도시나 마을 구성의 필수적 요소로 제시된다. 그는 ‘입구 주변 공간’, ‘계단 앞 정원’, ‘건물과 거리 사이의 경계공간’ 등 100개 이상의 패턴 중 여러 전이공간의 개념을 포함시켜 사용자의 행태 변화와 정서적 반응을 촉진시키는 설계의 핵심 요소로 강조하였다.
또한, Richard Sennett는 『The Fall of Public Man』에서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분리가 현대 도시의 사회적 단절을 초래한다고 진단하며, 전이공간의 물리적·사회적 구조가 이러한 단절을 완충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이러한 사회학적 관점은 조경 설계가 물리적 디자인을 넘어서 사회적 결속력(social cohesion)을 촉진하는 전이공간 전략을 어떻게 반영해야 하는지를 시사한다.
전이공간의 설계는 시각적 흐름, 동선 분산, 식재 구성, 음영 형성 등 복합적인 설계 요소를 고려해야 하며, 이는 조경학적 계획수립 시 공간 사용자의 행동 분석(behavioral analysis), 환경 반응(environmental response), 생태계 기능(ecosystem service) 등을 기반으로 정량화할 수 있다. 이후 이어질 문단에서는 도시 내 실현된 전이공간 사례와 이론적 기반 위에 설계된 공간들의 성과를 통해, 조경학이 제시하는 실질적인 설계 전략을 분석할 것이다.
조경학 기반 전이공간의 도시 적용 사례와 효과 분석
도시 맥락에서 실현된 전이공간 설계 사례 분석
전이공간은 도시 환경의 복잡성과 밀도 속에서 인간 중심의 공간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적 구성요소이다. 최근 조경학은 이러한 전이공간을 중심으로 도시 내 다양한 경관구조를 재해석하고 있으며, 주요 도시계획 프로젝트에서 이 개념의 실현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싱가포르의 비샨-앙모키오 공원(Bishan-Ang Mo Kio Park)은 하천 복원과 함께 공공녹지를 연결하는 전이공간 설계의 대표 사례로 주목받는다. 이 공원은 주변 도심과 공원을 연결하는 다양한 보행 네트워크와 그늘 공간, 쉼터 구조를 통해 물리적 연계성과 시각적 연속성을 확보하고 있다.
또한, 독일 프라이부르크(Freiburg)의 바이오톱 네트워크 설계는 생물 다양성과 도시 주거지 사이의 전이지대 역할을 하는 그린 인프라 구조를 도입했다. 이 설계는 도시 개발과 자연 보호를 동시에 고려한 계획으로서, 조경학의 다층적 접근법—생태, 사회, 경관의 통합—을 실현한 사례이다. 이러한 전이공간은 단순한 경계 공간이 아니라 생물군집 간 이동경로 확보, 이용자의 정서적 회복, 미기후 개선 등 복합적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
한국에서는 서울의 북서울꿈의숲, 서울숲 등 대규모 공원과 인접한 도시 공간 사이의 녹지 완충지대가 효과적인 전이공간 사례로 평가받는다. 이들 사례는 조경계획 수립 시 '연결성(connectivity)'과 '가독성(legibility)'을 동시에 충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경계 장치—식재 레이어, 낮은 담장, 음영시설, 물 요소—등이 전략적으로 배치된 결과물이다.
특히 ENVI-met, Rhino-Grasshopper 기반 시뮬레이션 도구를 활용하여 미기후 효과와 열환경 개선 지표를 분석한 연구들은 이러한 전이공간이 도시기후 적응형 설계의 핵심 기제로 작용함을 실증하고 있다. 국내외 다양한 연구 결과는 전이공간이 단순히 심미적 공간구성의 일부를 넘어서, 기능적·생태적 설계 전략의 중심축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조경학이 설계 기반의 실천학(practice-based discipline)일 뿐만 아니라, 도시환경의 복잡성을 해석하고 중재하는 이론적 프레임워크를 제공하는 학문임을 입증한다. 앞으로 이어질 문단에서는 이러한 사례 분석을 토대로 조경학이 어떻게 전이공간을 통한 통합적 도시 조성 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다룰 것이다.
조경학 기반 전이공간 통합 설계 전략
조경학적 다학제적 접근과 시스템 기반 설계
전이공간을 효과적으로 설계하기 위해서는 단일 학문적 시야를 넘어선 다학제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조경학은 도시계획, 건축학, 환경심리학, 생태학, 수문학 등 다양한 분야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공간의 연속성과 기능적 다층성, 그리고 사용자의 정서적 반응을 모두 고려할 수 있는 설계를 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어, 공간사용자의 인지 반응을 분석하는 환경심리학의 S-O-R(Stimulus-Organism-Response) 모델은 전이공간의 감성적 설계를 설명하는 데 유용하며, 이는 조경 공간이 제공하는 자극이 이용자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구조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해준다. 여기에 GIS 기반의 공간 시뮬레이션, 공간 통계 분석 등 도시정보기술(Urban Information Technology)이 접목되면, 전이공간의 입지 선정과 기능 배치의 정량적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시스템 기반 설계(System-based Planning)는 이러한 다학제적 통합을 실천하는 대표 전략으로, 각 공간 요소를 개별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아닌 상호작용과 순환적 흐름 속에서 구조화하는 방법론이다. 조경학의 시스템 설계 관점은 전이공간이 단지 '공간 사이의 공간'이 아닌, 도시 구조 전체의 기능성과 감성적 가치 전달을 매개하는 시스템의 핵심 노드라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관점은 도시 회복력(urban resilience), 기후 적응(adaptive planning),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등의 개념과도 밀접하게 연결되며, 전이공간을 통해 도시 전체의 경관 회복력을 높이는 전략으로 확장될 수 있다.
전이공간의 미래 지향적 설계 방향과 조경학의 과제
기후위기와 도시 밀도의 증가, 디지털 전환이라는 복합적 미래 과제를 고려할 때, 전이공간은 단순한 경관요소를 넘어 사회적, 생태적, 기술적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유연한 플랫폼으로 기능해야 한다. 예컨대 스마트 전이공간(smart transitional space)은 IoT 기술을 활용해 이용자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조도·온습도·음향환경을 조절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설계를 적용할 수 있다. 이러한 공간은 기후 적응형 디자인(climate adaptive design)과 맞물려, 외부환경의 변화에 따라 공간의 사용성을 조정함으로써 보다 지속가능한 경관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또한 조경학은 이러한 전이공간이 갖는 '심리적 완충지대'로서의 기능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 도시 스트레스 증가와 정신건강 문제에 대응하는 회복적 환경(restorative environment)의 구축은 조경 설계에서 중요한 가치로 부상하고 있으며, 전이공간은 그 중심에서 기능할 수 있다. Ulrich의 회복 환경 이론에 따르면, 자연 요소가 포함된 전이 공간은 정서적 안정과 주의 회복(attention restoration)을 촉진하는 데 유리하며, 이는 녹색 인프라와 결합된 전이공간이 단순한 통로가 아닌 회복 공간으로 설계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결국 조경학은 전이공간을 단지 '비워진 공간'이 아닌, 다양한 인간 활동과 환경 요인이 상호작용하는 다기능적 공간으로 재정의해야 하며, 그 실현을 위해 과학적 분석, 감성적 설계, 기술적 지원이 결합된 통합적 설계 전략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조경학 이론과 설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경학 기반 고령화 사회 대응형 치유 조경 디자인 (0) 2025.04.30 조경학에서 본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공공 조경 설계 (0) 2025.04.30 조경학 기반 기후회복형 조경 설계와 물순환 시스템 (0) 2025.04.29 조경학 관점에서 본 도심 소공간 활용과 커뮤니티 활성화 (0) 2025.04.27 조경학 기반 도시 문화유산 경관의 보존 및 현대화 전략 (0) 2025.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