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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경학 이론과 설계를 전달해드리는 클로이의 블로그입니다.

  • 2025. 4. 30.

    by. chloe2

    목차

      조경학 기반 고령화 사회 대응형 치유 조경의 개념과 필요성

      고령화 사회에서 조경의 역할 재정립

      21세기 들어 급격히 진행된 인구 고령화는 조경학의 사회적 역할을 재정의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유엔(UN)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4%를 넘으면 '고령사회', 20%를 초과하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하는데, 한국은 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이 확실시된다. 이러한 변화는 의료·복지 시스템뿐 아니라 생활환경 전반의 재설계를 요구하며, 조경은 고령자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공간 치료적 접근의 핵심 분야로 부상하고 있다.

      치유 조경(healing landscape)은 단순히 아름다운 공간을 조성하는 것을 넘어서, 이용자의 심리적 안정, 생리적 회복, 사회적 소통을 유도하는 설계를 의미한다. 치유 조경의 개념은 미국 환경심리학자 Roger Ulrich의 '자연 회복 이론(Stress Reduction Theory)'과 Rachel & Stephen Kaplan의 '주의 회복 이론(Attention Restoration Theory)'을 근거로 확립되었으며, 이는 고령자의 정서 불안, 인지 저하, 사회적 고립 등의 문제를 완화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보고된다. Ulrich의 연구에 따르면, 병원 입원 환자들이 자연 풍경이 보이는 병실에 배정될 경우, 회복 속도와 약물 사용 빈도가 감소하는 등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났다.

      고령자 대상의 치유 조경은 일반적인 조경 설계와는 구분되는 특화 원칙을 필요로 한다. 첫째, 물리적 안전성과 이동성 확보가 전제되어야 하며, 이는 휠체어 및 보행보조기 사용자를 위한 경사도 설계(최대 5% 이내), 휴게 공간 간의 거리 간격 조정, 시각 대비가 높은 바닥 및 식재 구성 등으로 구체화된다. 둘째, 감각 자극을 통한 인지 활성화 요소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향기 식물(aromatic plants), 텍스처가 다양한 촉각 식생, 계절별 색상 변화 식재 등은 인지기능 저하를 늦추는 데 기여한다. 셋째, 사회적 소통을 유도하는 공간 배치가 중요하다. 이는 원형 쉼터, 커뮤니티 정원, 다세대 이용 가능한 산책로 등으로 구현된다.

      치유 조경의 공간적 적용 원칙과 국제 기준

      세계보건기구(WHO)는 고령친화도시(Age-friendly City)의 8대 영역 중 하나로 '야외공간 및 건물'을 제시하며, 고령자를 위한 환경 디자인이 건강과 직결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국제 기준은 조경 설계에 있어 보다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가이드를 제공하며, 특히 치유 조경은 다음과 같은 공간 단위에서 실현 가능하다:

      • 의료기관 외부 치유정원(Therapeutic Garden)
      • 지역 커뮤니티 기반 치유공원(Healing Park)
      • 복합문화시설 내 치유 광장(Plaza Garden)
      • 노인요양시설 연계 치유 산책로(Treatment Trail)

      각 공간 유형은 특정 프로그램과 기능이 결합된 조경 요소들로 구성되며, 심리적 안정, 사회적 상호작용, 신체활동 유도를 통해 고령자의 전인적 건강을 촉진한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공간 유형 핵심 프로그램 주요 조경 요소 기대 효과
      치유정원 감각 자극, 명상, 원예치료 향기 식물, 나무 벤치, 수경 시설 스트레스 완화, 정서 안정
      치유공원 산책, 운동, 대화 순환 보행로, 야외 운동기구, 그늘 쉼터 관절 강화, 사회적 교류
      치유 광장 다세대 이용, 문화행사 개방형 무대, 전통 식재, 음영 구조물 세대 간 소통, 문화 경험
      치유 산책로 반복적 이동, 안전 휴식 저경사 동선, 연속적 벤치, 수목 터널 낙상 예방, 이동 지속성

      고령화를 대응하는 치유 조경은 단순한 공간의 아름다움보다 기능성과 감수성을 전제로 하며, 공간 구성을 통해 사용자 상태의 변화를 유도하는 '능동적 환경치료(active landscape therapy)'의 철학을 반영한다. 이는 조경학이 단지 시각적 설계 기술이 아니라, 인간 삶의 회복과 지속 가능성에 기여하는 치유 기반 학문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핵심적 사례이다.

      조경학 기반 고령화 사회 대응형 치유 조경 디자인

      조경학 기반 고령자 인지·정서 치유 설계 요소 분석

      인지 활성화를 위한 설계 원리

      고령자의 인지기능 저하를 예방하고 완화하기 위한 조경 설계는, 단순한 자극보다는 인지적 참여와 상호작용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적용되는 대표적인 개념은 ‘인지 자극 경관(Cognitive Stimulating Landscape)’으로, 이는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등 다양한 감각을 동시적으로 활용하여 두뇌 활동을 유도하는 공간 구조를 말한다. 이러한 경관은 특정 기억을 불러일으키거나, 판단과 예측을 필요로 하는 환경을 구성함으로써 고령자의 주의 집중과 기억 활성화를 돕는다.

      예를 들어, 미로형 산책로는 방향 감각과 판단을 요구함으로써 인지적 참여를 유도하며, 식물의 명칭을 표기한 표지판은 기억 회상을 자극할 수 있다. 또한 계절 변화를 반영한 식재는 시간 감각을 인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러한 요소들은 일본의 도시 고령친화형 공원 모델에서도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으며, 후생노동성에서 발간한 『고령자 보건조경 가이드라인』에서는 정기적 동선 변화와 간접학습 자극 요소를 치매 예방을 위한 효과적인 조경 기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더불어 공간 구성은 인지적 명료성(legibility)과 예측 가능성(predictability)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Kevin Lynch의 도시 이미지 이론에서도 강조되듯, 사용자가 자신의 위치와 방향을 인지할 수 있는 명확한 경관 요소의 배치는 고령자에게 심리적 안정감과 동시에 인지적 자율성을 제공한다. 따라서 조경 설계자는 시각적 구조화, 색 대비 활용, 명확한 경계선 처리 등을 통해 인지기반 설계 원칙을 실제 공간에 효과적으로 구현해야 한다.

      정서 회복과 감성적 설계 기법

      정서적 안정은 고령자 삶의 질에 매우 중대한 영향을 미치며, 조경학은 이 정서적 회복을 유도하는 감성 중심 설계를 통해 치유 공간을 완성할 수 있다. 특히 자연 회복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시각적으로 복잡하지 않고 조화로운 자연경관을 접할 때 스트레스 반응이 낮아지고, 부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어 신체적 이완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따라서 치유 조경에서 ‘경관 정서성(Affective Landscape)’의 개념이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이 개념은 이용자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쾌적함, 안정감, 친밀감 등의 감정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방식으로, 대표적인 기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곡선형의 동선과 유기적 식재는 공간의 부드러움을 강조하여 불안감 해소에 효과적이다. 둘째, 음향 설계를 고려한 물소리(수경 시설), 바람에 흔들리는 식물, 새소리 유도 요소는 감성적 연계를 강화한다. 셋째, 추억 회상을 유도하는 설계—예를 들어, 전통 텃밭 공간, 오래된 나무, 고전적 건축 형태와 결합된 공간 등—은 정서적 회복을 가속화한다.

      정서 회복 조경의 효과는 다양한 실증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국내의 경우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연구팀이 2020년 수행한 『치유정원 조성이 고령자의 우울감 감소에 미치는 영향 연구』에서는, 치유 조경을 이용한 고령자 그룹이 대조군보다 우울감 척도(CES-D)가 유의미하게 낮아진 결과를 보여주었다. 이는 감성적 경관 설계가 단순한 미적 요소를 넘어, 실질적인 정서 치료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뒷받침하는 근거다.

      조경학은 이처럼 인간의 정서 상태를 조절할 수 있는 유일한 물리적 환경 설계 분야이며, 고령화 사회에서의 치유 조경 설계는 단지 치장된 공간이 아닌, 감성적 복지의 물리적 매개체로 작용하게 된다. 이를 위해 조경가는 과학적 근거 기반 설계와 감성적 통찰을 융합하는 감정 설계자(emotional landscape designer)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조경학 기반 치유 조경의 환경 설계 기준과 관리 전략

      치유 환경 설계의 필수 공간 구성 요소

      치유 조경은 단순한 조형미나 식재 디자인을 넘어서, 이용자의 신체적·정서적·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다기능적 환경 구조를 필요로 한다. 특히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치유 조경은 일관된 이동 동선과 반복적 경관 경험이 핵심이 되며, 이는 동선 구성, 식생 배치, 쉼터 분포, 시각 정보 체계 등으로 구체화된다. 이러한 물리적 환경 설계는 미국 ASLA(American Society of Landscape Architects)와 AHTA(American Horticultural Therapy Association)에서 제시한 ‘치유 경관 설계 가이드라인’을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해당 가이드라인에서는 다음과 같은 핵심 요소들을 명시하고 있다: ① 사용자 중심의 반복 동선 구조, ② 미세기후 조절을 위한 수목 및 음영 구조물, ③ 주기적 관찰이 가능한 계절성 식재, ④ 탈중심화된 소규모 정적 공간의 분산 배치, ⑤ 정보 전달을 위한 명료한 안내 체계. 이 요소들은 고령자가 공간 내에서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이동하고, 환경과 감각적으로 교류하며, 필요 시 독립된 휴식 또는 사회적 상호작용이 가능하도록 설계된다. 또한, 소재 선정에서도 질감이 부드럽고 미끄럼 방지 기능을 갖춘 포장재 사용, 수평적 시야 확보가 가능한 지형 조정 등 안전성과 접근성이 동시에 고려된다.

      치유 조경의 공간계획에서는 시계 축 중심 구성(axis-based planning)보다 감각 동선 중심 구성(sensorial loop-based design)이 더 적합하다는 분석도 있다. 이는 고령자들이 물리적 거리보다는 체감 난이도, 인지 가능성, 휴식 리듬에 따라 공간을 사용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설계자는 단순한 거리지표보다 ‘정신적 거리(mental distance)’를 기준으로 공간의 밀도와 리듬을 조정해야 하며, 이는 환경심리학과 조경학의 통합 설계 모델로 발전하고 있다.

      유지관리 시스템과 고령자 맞춤 운영 전략

      치유 조경의 효과는 초기 설계만으로 지속될 수 없으며,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유지관리 시스템을 통해 효과가 유지되어야 한다. 고령자를 위한 조경 공간은 특히 계절에 따라 급격한 환경 변화에 취약하므로, 식생의 생육 주기, 일조 변화, 바람길 분석 등 미세환경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관리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조경학에서는 최근 IoT 기반의 스마트 조경 유지관리 시스템(Smart Landscape Maintenance System)이 적용되고 있으며, 이는 수분 센서, 일사량 측정기, 자동 관수 시스템 등을 연계한 환경 적응형 유지관리를 가능하게 한다.

      또한, 공간을 단순히 ‘관리 대상’이 아닌 ‘참여 대상’으로 전환시키는 전략도 중요하다. 고령자가 직접 참여하는 자조적 관리 모델(self-care garden model)은 사용자의 자존감과 주체성을 회복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예컨대 일본 가나가와현의 커뮤니티 치유정원 프로젝트에서는 은퇴 고령자들이 관리 주체로 참여하여 정원 유지뿐 아니라 프로그램 운영, 지역 커뮤니티 연계 등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는 치유 조경이 일방향적 ‘서비스’ 공간에서 상호작용적 ‘생산’ 공간으로 진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결과적으로 조경학은 치유 환경의 설계뿐 아니라, 공간이 장기적으로 작동하고 지속가능한 치유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유지·관리 체계까지 총체적으로 설계해야 하며, 이를 위해 물리적, 기술적, 사회적 조건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운영 프레임워크가 요구된다. 이러한 통합적 접근은 조경학이 공간 설계를 넘어 인간의 건강과 사회 시스템까지 포괄하는 전략적 학문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조경학 기반 치유 조경의 정책 연계와 제도적 확장 방향

      제도적 기반 구축과 법제화의 필요성

      고령화 사회에 대응하는 치유 조경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책과 법제도의 유기적 연계가 필수적이다. 현재 대부분의 조경 설계 기준은 일반적 도시녹지나 공원녹지에 국한되어 있으며, 고령자 맞춤형 치유 조경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 지침과 법적 근거는 미비한 상황이다. 따라서 조경학은 공공정책의 설계 초기부터 개입 가능한 제도적 위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으며, ‘고령친화 조경 환경 설계 기준’과 같은 표준화된 가이드라인의 국가 차원 제정이 요구된다.

      이와 더불어 치유 조경 관련 예산이 확보될 수 있도록 복지부, 국토부, 환경부 등 관계 부처 간 협력 기반의 예산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영국의 NHS(National Health Service)는 정원 치료(Horticultural Therapy)와 자연 기반 처방(Green Prescription)을 공식 제도화하여, 조경 공간을 의료의 일환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도시 내 치유 조경 설계가 국가 보건 체계에 통합되고 있다. 한국 역시 건강보험과 연계된 자연기반 중재 전략을 조경 차원에서 제안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법제화 흐름은 고령자 주거복지정책, 공공건강관리, 지역커뮤니티 정책 등과 연계되어 조경학의 전략적 위치를 확대시킬 수 있으며, 조경 공간이 단순한 녹지에서 사회적 안전망의 한 축으로 기능하도록 재편될 수 있다. 이는 곧 ‘공공 조경복지’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형성으로 이어지며, 조경가가 공간 디자이너를 넘어 정책 설계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치유 조경을 위한 교육 혁신과 전문가 역량 강화

      제도적 정착과 함께 치유 조경의 실질적 확산을 위해서는 조경 전문 인력의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개편이 병행되어야 한다. 기존 조경학 교육은 식재, 구조, 동선 중심의 기술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으나, 고령자 대상 조경 설계는 감성, 인지, 생리학, 사회복지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학부 및 대학원 수준에서 치유 조경 스튜디오, 건강환경설계론, 고령자 커뮤니케이션 기법, 커뮤니티 기반 설계 실습 등을 커리큘럼에 포함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민간 자격제도 또는 국가공인 인증제를 통해 ‘치유 조경사(Healing Landscape Designer)’와 같은 전문 직무를 제도화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이는 미국 AHTA와 같이 원예치료 및 치유환경 설계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조경가를 양성하는 체계를 통해 실현 가능하며, 향후 지역 단위 조경 공모나 복지시설 조경 설계 시 해당 자격을 필수 요건으로 채택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조경학은 단지 공간을 아름답게 설계하는 기술을 넘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도시 건강을 증진시키는 공공복지 전략의 핵심 학문으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고령화 시대의 치유 조경은 정책, 제도, 교육, 기술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종합 설계 영역이며, 이를 위해 조경가는 다학제적 감각과 정책적 식견을 함께 갖춘 전략가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