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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조경학 기반 도시 문화유산 경관의 정의와 보존 패러다임 변화
1. 도시 문화유산 경관의 개념과 조경학의 접근 시각
도시 문화유산 경관(Urban Cultural Heritage Landscape)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도시 구조, 건축물, 공공공간, 자연지형 등 인문자연적 요소들이 어우러져 형성된 공간을 말한다. 단지 문화재 단위의 보호를 넘어서, 경관의 연속성과 역사성, 장소성, 정체성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조경학에서는 이 도시 경관을 물리적 유산이 아닌 ‘문화의 지속적 발현이 이루어지는 무대’로 인식하며, 보존과 활용, 현대화라는 세 가지 축을 동시에 고려하는 통합적 설계를 지향한다.
문화유산 경관은 UNESCO의 2005년 "Historic Urban Landscape(HUL)" 개념을 계기로, 물리적 유산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사회적 맥락, 공동체 활동, 비물질적 문화까지 포함하는 방향으로 개념이 확장되었다. 조경학에서는 이러한 확대된 문화유산 개념을 도시설계, 생태계 서비스, 공간사용 행태 등 다양한 연구 영역과 접목하여, 단순한 보존에서 진화된 실천을 모색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도시 성곽 주변의 공원화는 단순한 ‘경관의 복원’을 넘어, 시민의 일상 동선, 축제 및 커뮤니티 행위, 관광 유입 등을 포괄하는 통합 설계 영역이다.
조경학은 특히 ‘경관 연속성(landscape continuity)’과 ‘경관 정체성(landscape identity)’ 개념을 강조한다. 경관 연속성은 시간적 흐름에 따른 경관의 누적성을, 정체성은 장소 고유의 문화적 표현을 의미한다. 이러한 요소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현대 도시 구조와 기능에 부합하도록 구성하는 것이 조경학의 핵심 전략이다. 따라서 도시 문화유산 경관의 보존은 ‘멈춰진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방식 안에 과거를 통합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2. 조경학 관점에서의 도시문화유산 보존 원칙
도시 문화유산 경관을 조경학적으로 해석하고 보존하기 위한 원칙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진정성(authenticity)의 유지. 이는 UNESCO에서도 강조하는 보존 철학으로, 물리적 재현보다 원래의 맥락과 의도를 존중하는 것이 핵심이다. 둘째, 층위적 접근(layered approach). 다양한 시기와 문명, 집단이 형성한 경관은 단일 시점이 아닌 ‘누적된 문화층’으로 바라보아야 하며, 이를 조경 설계에 반영해야 한다. 셋째, 경관 경험의 다감각화(multisensory experience). 단순한 시각적 재현이 아니라 촉각, 청각, 후각 등 다양한 감각을 통해 역사성을 체험하게 하는 설계 전략이다. 넷째, 사회적 활력의 회복. 보존이 일상생활과 분리된 방식으로 이루어질 경우, 공간은 박제되기 쉽다. 따라서 지역 커뮤니티와의 통합된 사용 전략이 필수적이다.
[표1] 조경학에서 제안하는 도시 문화유산 경관 보존의 4대 원칙
원칙 개념 설명 설계 적용 방식 예시 진정성 유지 원형 복원보다 맥락 중시 기존 석조 경계와 주변 식재 혼합 유지 층위적 접근 복합 시대의 문화층 존중 구도심에 현대 재료의 투명 구조물 설치 다감각적 체험 오감 자극을 통한 역사성 유도 조선시대 정원 향기 식물 도입, 물소리 유도장치 사회적 활력 공동체 참여 기반 재구성 주민 주도 마을축제 연계 광장 설계 조경학에서 본 도시 문화유산의 현대화 전략과 공간 재창조
1. 보존에서 재해석으로: 현대 도시에서의 문화유산 재구성
조경학은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과거를 현재화(currenting the past)하는 적극적 실천을 강조한다. 이 과정은 ‘경관 재해석’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된다. 경관 재해석이란 기존 문화유산의 물리적 경계를 유지하되, 현대적 기능과 상징을 삽입함으로써 현재 도시민의 생활양식과 연결 짓는 전략이다. 예컨대, 과거의 성벽이 있던 자리에 LED 라이트 조명을 활용해 성곽의 윤곽을 야간 경관으로 구현하거나, 옛 철길을 걷기 좋은 산책길로 재조성하는 것은 역사성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경험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전략은 조경학에서 강조하는 ‘기억의 장소(places of memory)’와 ‘역사적 의미의 확장’이라는 개념과 맞닿는다. Pierre Nora가 제시한 "Lieux de Mémoire"(기억의 장소)는 물리적 공간이 과거 사건의 기억을 호출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조경 설계자는 단순히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구성하고 재현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로써 문화유산 경관은 박제된 유물이 아닌, 살아있는 도시의 서사로 기능하게 된다.
2. 문화유산 경관의 기능적 재해석과 융합 설계 전략
도시 내 문화유산 경관이 단절된 보존 구역이 아닌, 일상 속 가로축 또는 거점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기능적 재해석이 필수적이다. 이는 경관을 단지 조망의 대상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이동, 휴식, 집회, 예술 활동, 교육 등 다양한 도시 기능이 융합되는 공간으로 재설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통시장 인근의 고가도로 하부 공간을 마을 텃밭과 야외 미술관으로 변환하거나, 폐쇄된 옛 한옥 마당을 야외 도서관과 문화예술 플랫폼으로 재설계하는 방식이 여기에 해당된다.
조경학은 이러한 융합 설계를 위해 ‘복합 프로그래밍(multi-programming)’이라는 기법을 적용한다. 이는 하나의 공간이 시간대나 사용자 유형에 따라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으로, 경관의 기능 유연성과 도시 적응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전략이다. 복합 프로그래밍은 물리적 구조의 다양성 외에도, 문화 콘텐츠와의 결합, 커뮤니티 사용 방식의 가변성 등을 포함하며, 문화유산 경관을 살아있는 도시 자산으로 변환하는 데 기여한다.
조경학을 기반으로 한 도시 문화유산 경관의 정책적 접근과 관리 체계
1. 제도적 보존 틀과 조경 설계의 통합
도시 문화유산 경관의 효과적인 보존과 현대화를 위해서는 단순한 설계적 개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에 따라 조경학은 법적, 제도적 틀 속에서 설계가 어떻게 구조화되고 운영되어야 하는지를 통합적으로 접근한다. 대표적인 국제 사례로는 UNESCO의 Historic Urban Landscape(HUL) 권고와 ICOMOS의 문화경관 헌장이 있으며, 이들은 문화유산 경관을 물리적 요소뿐 아니라 그 장소의 공동체 정체성, 관리 방식, 생태적 지속가능성까지 아우르는 복합 시스템으로 간주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문화재보호법」과 「도시공간문화재보전특별법」을 기반으로 문화유산 경관을 관리하고 있으나, 조경 설계 차원에서는 보다 탄력적이고 사용자 중심의 계획이 요구된다. 특히 도시재생사업과 연계된 문화유산 경관 계획은 공간의 물리적 보존과 주민의 생활 재생,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다층적 목적을 동시에 달성해야 하며, 이는 조경학이 실무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유연한 틀을 요구한다. 예컨대, 지역별 문화자산에 대한 경관영향평가를 도입하거나, 문화경관계획 가이드라인을 통해 설계자의 재량 안에서 창의적인 보존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조경 설계자는 이러한 제도적 장치들을 단순히 행정상의 규제가 아닌, 창의적 설계 가능성을 열어주는 도구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문화유산 보호구역 내에서 허용 가능한 재료, 형태, 색채 범위를 사전에 제시함으로써, 설계자는 그 안에서 지역성과 맥락성을 반영한 독창적인 공간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과정은 '규제의 융합적 해석'이라는 방식으로, 디자이너가 제도 속에서 경관의 사회문화적 의미와 조형적 잠재력을 동시에 실현하는 데 초점을 둔다.
2. 시민 참여 기반의 운영과 모니터링 체계 구축
도시 문화유산 경관은 단지 건설된 이후의 물리적 구조가 아니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용되고 해석되는 방식에 의해 그 의미가 완성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조경학은 문화유산 경관의 사후 운영 및 모니터링 체계 역시 공간 설계의 연장선으로 보고, 시민 참여 기반의 관리 방식을 도입한다. 이는 공동체가 직접 공간을 해석하고 유지하며, 새로운 문화적 의미를 지속적으로 부여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조경 설계자는 단지 디자이너를 넘어 '경관 큐레이터'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대표적인 모델은 '살아있는 문화유산 관리' 개념이다. 이는 특정 기관이 일방적으로 공간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주민, 청년 예술가, 문화단체 등 다양한 주체들이 공간의 운영과 기획에 참여하는 구조로, 경관의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핵심 수단이 된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재래시장에서 주민들이 주도하는 문화콘서트, 야시장, 마을 전시 등이 열릴 경우, 해당 경관은 과거의 기억뿐 아니라 현재의 활력과 미래의 가능성을 동시에 내포하는 도시의 복합 문화 플랫폼으로 작동하게 된다.
이러한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조경학은 '경관 모니터링 프레임워크(Landscape Monitoring Framework)'를 도입한다. 이는 정량적 지표(이용률, 관리비, 기능 유지율 등)와 정성적 지표(이용자 만족도, 문화 콘텐츠의 적절성, 공동체 반응 등)를 병행 평가하는 방식이며, 공간의 생명력을 장기적으로 측정하고 조정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조경 설계는 단발성 프로젝트가 아닌, 지속가능한 도시문화 경관 관리의 핵심 축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조경학에서 본 도시 문화유산 경관의 생태적 연계성과 지속 가능성
1. 생태 기반 경관 연결성 확보의 필요성
조경학은 도시 문화유산 경관을 단순히 역사적 장소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이 상호작용하는 복합적 시스템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문화유산 경관은 도시의 생태 네트워크 안에 위치한 ‘중재 지점(mediator zone)’으로 간주되며, 이 지점을 통해 생물 다양성 확보, 기후 회복력 증대, 생태적 흐름의 연속성 등이 강화될 수 있다. 과거 성곽, 전통 정원, 고택 주변의 녹지 시스템은 단절된 보존 대상이 아닌 도시 생태계 내 순환과 연결의 중요한 매개 요소로 기능할 수 있다.
생태적 연계성(ecological connectivity)은 도시 내 단절된 녹지 공간을 하나의 그린 인프라(Green Infrastructure)로 통합해주는 조경 전략으로, 조경학에서는 이를 위해 복원식재기법, 토종 수종 도입, 야생동물 서식처 연결, 완충녹지 구축 등의 수단을 사용한다. 특히 문화유산 경관에서는 보존 가치와 생태적 기능이 충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생태·문화 중첩 구역(eco-cultural overlay zone)' 개념을 통해 두 가치를 동시에 충족하는 설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2. 생태문화경관의 도시 회복력 기여
생태문화경관(ecocultural landscape)은 문화유산의 장소성과 생태적 기능을 동시에 지닌 공간을 지칭하며, 이는 도시의 회복력(urban resilience)을 강화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회복력이란 외부 충격(기후 위기, 사회 변화 등)에도 공간 시스템이 지속적으로 작동하고, 새로운 기능으로 전환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조경학에서는 이 회복력 확보를 위해 물리적 유연성(예: 다기능 공간), 생태적 자립성(예: 자연형 수공간), 문화적 적응성(예: 지역전통 활용한 재료와 기법)을 포함한 통합 설계를 도입한다.
예를 들어, 전통 정원의 연못을 생태연못으로 복원하고, 고택 주변의 배수로를 자연형 빗물 순환 시스템으로 연결하거나, 전통 축제 공간을 기후 적응형 그늘 쉼터와 병합하는 방식은 문화유산의 의미를 유지하면서 생태적 회복력을 함께 확보하는 사례다. 이러한 방식은 도시의 지속 가능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문화 경관을 동시대 시민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시키는 장치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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