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학에서 분석하는 행동설정이론과 공공공간 계획

1. 행동설정이론(Behavior Setting Theory)의 개념과 조경학적 해석

이론의 기초: 행동설정의 개념 정립

행동설정이론(Behavior Setting Theory)은 환경심리학자 로저 바커(Roger G. Barker)에 의해 1940~50년대에 정립된 이론으로, 특정한 물리적 환경 속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행동 패턴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바커는 인간의 행동은 단순히 개인의 심리 상태에 의해서가 아니라, 특정한 물리적-사회적 환경과 결합된 '행동설정(behavior setting)'이라는 단위 안에서 구조화되어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이 이론은 환경 디자인, 특히 조경학에서 공간 구성과 이용자 행태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개념적 도구로 활용된다.

조경학에서의 적용 맥락

조경학은 도시공간, 공원, 광장 등 공공공간을 설계할 때 다양한 사회적 행태를 수용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때 행동설정이론은 환경 속에서의 행동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예측하거나, 특정 공간이 유도하는 행동의 유형을 해석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어린이 놀이터, 노인 쉼터, 야외 공연장 등은 각각 고유의 행동설정 단위를 갖고 있으며, 설계자는 이러한 단위가 자연스럽게 작동하도록 공간 요소를 배치해야 한다.

이론적 근거와 학문적 확장

행동설정이론은 이후 생태심리학(ecological psychology) 및 상황행동이론(situational behavior theory)으로도 확장되었으며, 제임스 깁슨(James J. Gibson)의 "어포던스(affordance) 이론"과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Gibson은 환경이 제공하는 가능성(affordance)에 따라 인간 행동이 유도된다고 보았으며, 이는 조경 공간에서의 행동유발 요소 설계에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조경 설계자는 물리적 구조가 심리적 자극을 제공하고 특정 행동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설계를 수행해야 한다.

 

2. 공공공간(Public Space)의 조성 목적과 조경 설계 전략

공공공간의 기능과 사회적 역할

공공공간은 단순한 개방된 장소를 넘어서, 공동체 구성원 간의 상호작용을 촉진하고, 도시의 정체성을 표현하며, 민주주의적 가치를 실현하는 사회적 플랫폼이다.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는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에서 공공공간이 사람 간 자연스러운 감시(natural surveillance)를 가능케 하며, 범죄 억제와 사회적 결속력 증진에 기여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조경학은 물리적 공간 구조를 통해 사회적 기능이 극대화되도록 계획하는 데 초점을 둔다.

행동설정이론을 활용한 공공공간 기획

행동설정이론을 기반으로 한 조경 설계는 공간이 유도하는 행동 시나리오를 고려해 공공공간을 구조화한다. 예를 들어, 광장에는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거나 퍼포먼스를 관람할 수 있는 열린 무대가 필요하며, 벤치와 수목은 체류와 소통을 유도하는 행동설정 요소가 된다. 반면, 산책로와 사이클 경로는 이동 중심의 설정이며, 이러한 설정 간 충돌이 없도록 경계 및 완충구역이 필요하다.

다양한 공간 유형의 기능 분석

공간 유형	주요 기능	행동설정적 해석
도시광장	집회, 소통, 문화 행사	집단 활동을 위한 중심적 행동설정
거리공간	이동, 멈춤, 휴식	경유형 행동설정과 일시적 체류 유도 요소 결합
근린공원	산책, 운동, 여가	반복적 일상 활동 중심의 안정된 행동설정
커뮤니티 정원	가드닝, 교육, 주민 소통	참여형 행동설정 구조, 공동체 정체성 형성 유도

이러한 기능 분석은 조경 설계자가 공간의 물리적 특성과 이용자의 사회적 행태를 통합적으로 고려하도록 돕는다.

 

3. 행동유도 요소(Affordance)의 조경 설계 적용

어포던스의 조경학적 정의

어포던스(affordance)는 환경이 사용자에게 제공하는 행동 가능성을 의미하며, 조경 공간에서 이용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직관적으로 제안하는 설계 요소를 뜻한다. 예를 들어, 낮게 놓인 돌계단은 아이들이 앉거나 뛰어오르도록 유도하고, 나무 그늘 아래 벤치는 자연스럽게 휴식을 제공한다. 이 개념은 Gibson의 시지각 이론에서 출발하였으며, Don Norman은 이를 사용자 경험 디자인에 적용해 ‘퍼셉티블 어포던스(perceptible affordance)’ 개념을 제시했다.

조경 설계에서의 실천 원리

행동설정이론과 어포던스 개념을 결합한 조경 설계는 다음과 같은 실천 전략을 따른다:

• 명확한 행동 유도: 이용자가 직관적으로 공간의 용도를 인지할 수 있도록 구성
• 자연스러운 흐름: 공간 간 동선 및 기능 전환이 부드럽게 이어지도록 설계
• 중복 기능 수용: 벤치가 앉기뿐만 아니라 소셜 허브 역할을 하도록 다기능화
• 사회적 상호작용 강화: 주변 환경과 시각적 연결을 통해 교류 가능성 확대

실증적 연구 근거

메릴린 테일러(Marilyn Taylor)의 연구에서는, 어포던스를 고려한 조경 공간이 단순한 미적 공간보다 이용자 만족도가 월등히 높다는 결과를 보였다. 또한, Jan Gehl의 도시공간 관찰 연구에 따르면, 물리적 장치가 행동을 제한하거나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유도하고 제안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인 사용자 경험을 만든다고 분석되었다.

 

4. 공공공간 내 행동 다양성 확보를 위한 조경 계획

행동다양성(Behavioral Diversity)의 중요성

현대 공공공간은 다양한 연령, 성별,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단일 기능 중심의 공간보다는 복합적이고 유연한 행동 설정이 요구된다. 행동다양성은 공공공간의 포용력과 사회적 활력을 높이는 핵심 요소이며, 이는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 및 포용적 설계(inclusive design)의 핵심 원칙과도 일치한다.

계층적 공간 구성 전략

공공공간에서의 행동 다양성을 수용하기 위한 대표적 전략은 ‘공간의 계층화’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공간 구조는 다양한 활동을 수용하는 데 유리하다:

• 개방 공간(Plaza): 대규모 집단 활동 중심
• 중간 규모 공간(Courtyard): 가족 단위 활동 및 소규모 이벤트 수용
• 소규모 공간(Pocket Space): 개인적 휴식, 독서, 사색 등 정적 활동 유도

이러한 다층적 구성은 행동 설정의 중첩과 전이를 가능하게 하여 공간의 활용도를 극대화한다. 이는 Space Syntax 이론의 연결성과 중심성 분석 결과와도 일치하며, 실제 이용 패턴을 예측하고 평가하는 데 유용하다.

커뮤니티 기반의 행동 다양성 실현

행동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역 주민과의 협력도 필수적이다. 행동 설정의 가능성은 단지 물리적 구조만이 아니라, 사회적 제도와 참여 문화에 의해 확대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경 설계자는 지역 커뮤니티와의 공감 기반 워크숍, 사용자 관찰 인터뷰, 시뮬레이션 워크플로우 등을 통해 데이터 기반의 다층적 행동 분석을 수행해야 한다.

 

5. 미래 공공공간 조성에서 행동설정이론의 역할

도시 회복력과 행동설정

행동설정이론은 도시 회복력(resilience)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자연재해, 감염병, 기후변화 등 다양한 위기 상황에서 공공공간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예측하고, 빠르게 재조정할 수 있는 유연한 행동 설정 구조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팬데믹 상황에서 공공 벤치의 거리 조정, 산책로 폭의 확장, 개방형 공간의 확보 등은 행동 설정 재설계를 요구한 대표적 사례다.

기술 기반 행동 설정 설계의 진화

IoT 센서, 스마트 CCTV, GPS 기반 사용자 흐름 분석 기술을 활용하면 행동설정이론은 더욱 정량적이고 실시간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이는 행동 기반 공간 리디자인(BSD: Behavior-sensitive Design) 개념으로 확장되며, 향후 AI 기반 조경 설계 시스템 개발의 기초가 된다. 이러한 기술 기반 조경학은 디지털 트윈(Digital Twin)과도 결합되어 가상 공간에서 사용자 행동을 시뮬레이션하고 최적의 행동설정을 사전 구축할 수 있다.

정책 및 교육 방향

행동설정이론은 조경 설계자뿐 아니라 정책 입안자, 도시계획가, 사회복지사 등과의 협업을 가능하게 하는 공통의 언어로 작동할 수 있다. 따라서 조경학 교육에서는 행동설정 분석, 환경심리학, 사용자 경험 디자인 등의 내용을 포함한 융합형 커리큘럼이 강화되어야 하며, 실습 중심의 행동 관찰 훈련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는 공공공간이 단지 아름다운 공간이 아닌, 인간 행태를 기반으로 한 살아있는 사회적 인프라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