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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지하공간 조경 설계의 개념적 출발점
지하보도는 도시의 교통 흐름과 보행자의 안전을 동시에 고려하는 구조물이다. 이러한 지하보도의 설계는 구조 공학과 도시계획학의 협업에 의존해왔지만, 최근에는 조경학(Landscape Architecture)의 이론을 적극적으로 통합하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다. 조경학은 전통적으로 지표면에서의 녹지 공간, 도시공원의 구성, 경관 미학을 다루었으나, 21세기 들어 도시의 다층 구조화에 따라 지하 공간까지 설계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조경학의 이론적 틀 중 하나는 이안 맥하그(Ian McHarg)의 "자연과 함께하는 설계(Design with Nature)" 개념이다. 맥하그는 조경 설계가 생태학과 환경 분석에 기초해야 한다고 보았으며, 이는 지하 공간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지하보도 주변 조경은 단순히 화분을 배치하거나 조명을 설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생리적 반응, 심리적 안정, 생태적 연계성을 모두 고려한 종합적 공간 설계여야 한다. 예를 들어, 조도(illuminance), 공기 순환, 음향 설계 등 비가시적 요소들이 이용자의 체류 시간과 만족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특히, 조도는 도시 지하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환경심리적 요소 중 하나로, 적절한 빛의 분포는 불안감 해소와 공간의 방향성을 동시에 제공한다.
리처드 세일러(Richard Thaler)의 넛지 이론(Nudge Theory) 또한 조경학 설계에 응용될 수 있다. 이는 사람들의 행동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 방식으로, 예를 들어 보행자의 시선을 유도하는 식재 패턴, 시각적 경계선, 색상 변화 등은 모두 넛지 설계에 해당한다. 지하보도는 폐쇄적 구조 특성상 방향성 상실과 불안감 유발이 빈번하기 때문에, 이러한 설계 요소는 조경학적 해석이 필수적이다.
또한, 도시공간의 층위적 구조 개념을 정립한 케빈 린치(Kevin Lynch)의 도시 이미지 이론도 중요하다. 그의 이론은 "경로(paths), 경계(edges), 지표(milestones), 지역(districts), 노드(nodes)"라는 다섯 요소로 구성되며, 이는 지하보도의 공간 해석 및 조경학적 배열에 그대로 응용된다. 예를 들어, 입구를 명확히 식별할 수 있는 식재 및 조형물은 "노드"를 강화하고, 동선 사이의 조형적 식재물은 "경계" 역할을 하며, 벽면 녹화는 경로 상의 일관성과 안정감을 제공할 수 있다.
이러한 이론 기반의 지하보도 조경 설계는, 결국 기능성과 미학성, 안전성과 생태적 지속 가능성이라는 조경학의 핵심 가치들을 입체적으로 실현하는 과정이다.
조경학과 지하상가 공간 내 심리적 안락감의 조성
심리적 설계 요소와 조경학적 연계
지하상가는 단순히 상업적 공간이 아니라, 현대 도시의 문화적, 사회적 활동이 이뤄지는 복합 기능 공간이다. 그러나 폐쇄성, 낮은 자연광, 복잡한 동선 등으로 인해 지하상가는 이용자에게 심리적 불안, 방향감 상실, 피로감 등을 유발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조경학은 지하상가의 물리적 설계뿐만 아니라, 심리적 안락감과 정서적 안정까지 설계의 대상으로 포함시키고 있다.
심리적 측면에서 가장 핵심적인 조경학 이론은 환경심리학(Environmental Psychology) 기반의 설계이다. 이론적으로는 로저 울리히(Roger Ulrich)의 스트레스 회복 이론(Stress Recovery Theory)이 대표적이다. 울리히는 자연 요소, 특히 식물의 시각적 자극이 스트레스 회복에 효과적임을 실험을 통해 입증하였으며, 이는 지하상가 내 실내조경(indoor landscaping)의 학문적 근거로 활용된다. 식물은 습도 조절, 미세먼지 흡수, 시각적 휴식이라는 실용적 기능뿐만 아니라, 폐쇄된 공간에서의 정서적 안정 기능도 수행한다.
뿐만 아니라, 시선 유도식 식재(linear planting) 기법은 동선 유도와 공간 인지에 큰 역할을 한다. 공간 구조가 복잡한 지하상가에서는 직선식재를 통해 경로를 명확히 하거나, 모서리 구간에 식재 및 조형물을 배치해 이용자의 시각적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 이는 넛지 이론과 연결되며, 행태 유도형 조경 설계로 분류된다.
또한, 생물다양성 조경(Biodiversity-Oriented Landscaping)의 적용도 고려할 수 있다. 이는 단일 식물종이 아닌 다양한 종을 배치하여 미세 생태계를 조성함으로써 자연성과 복잡성의 균형을 맞추는 전략이다. 연구에 따르면, 생물다양성이 높은 공간은 이용자에게 더욱 긍정적인 정서 반응을 유도한다(Van den Berg, A. E. et al., 2010). 생물다양성은 단순한 식재 종류의 나열이 아니라, 층위 구조(지피식물, 관목, 교목), 계절성, 색감 조화를 함께 고려하는 고차원적 설계를 요한다.
마지막으로 음향 조경(Acoustic Landscaping) 개념도 지하 조경 설계에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 이는 인공 폭포, 수경 시설 등을 통해 백색소음(White Noise)을 유도함으로써 외부 소음 차단 및 심리적 안정 효과를 제공하는 설계 기법이다. 이는 울리히의 이론뿐 아니라, ISO 12913-1의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 기준과도 연계된다. 소리는 공간의 심리적 안락감에서 시각 요소만큼이나 중요한 조경학적 설계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조경학 기반 지하공간 설계 요소 비교
조경 요소 적용 위치 주요 효과 관련 이론 식재 설계 보행자 경로, 입구 구간 방향성 유도, 심리적 안정 넛지 이론, 울리히 이론 조명 계획 천장 및 벽면 불안감 해소, 공간 지각 향상 환경심리학, 린치 도시 이미지 이론 음향 조성 공용 공간, 휴식 구역 백색소음 통한 스트레스 완화 사운드스케이프, ISO 12913-1 생물다양성 벽면, 화단, 통로 생태연결성, 심리적 자극 생물다양성 조경 이론 구조적 경계 입구, 교차점 동선 안내, 구역 인식 도시 이미지 이론 조경학에서 본 지하보도 조경의 생태적 지속 가능성
생태 시스템 관점의 조경 설계 적용
조경학은 단지 인간의 시각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생태계 복원과 지속 가능한 도시구조를 구축하는 학문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하보도의 조경 설계는 단순 미적 구성에서 벗어나 생물학적, 생태학적 관점이 통합된 시스템적 접근이 요구된다.
지하 공간의 생태계 설계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구분된다. 첫째는 자연 생태계와의 연결성 확보다. 이는 지표면과 지하 공간 간의 에코톤(ecotone) 역할을 수행하게 만드는 것으로, 예컨대 벽면 녹화나 투광 천장 등을 통해 자연광과 식물, 곤충 등과의 간접 교류를 가능케 한다. 둘째는 자체 생태계 구성이다. 지하 공간은 인공적 폐쇄 공간이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자급자족적 생태계, 예컨대 내부 미기후 조성, 미생물 군집, 이끼류 식재 등으로 구성된 ‘내부 생태 회로’를 설계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 개념은 국제조경가협회(IFLA), UN 지속가능도시지표(SDGs)에서도 강조되는 키워드이다. 조경학에서의 지속 가능성은 단순한 재료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유지관리 비용, 생태계 서비스 가치, 사회적 수용성을 모두 포괄하는 총체적 개념이다. 예를 들어, 일시적 설치물이 아닌 반영구적 생태 기반 인프라(Green Infrastructure)는 유지비용을 절감하고 장기적으로는 탄소중립에 기여할 수 있다.
이러한 설계는 Low Impact Development(LID) 방식으로 구체화되며, 이는 기존 도시 기반시설 대비 최소한의 환경 영향을 주는 방식을 말한다. LID 설계는 미국 조경학회(ASLA) 및 한국조경학회에서도 최근 10년간 지속적으로 연구되고 있는 핵심 키워드이다.
이처럼 조경학을 기반으로 한 지하보도 조경 설계는, 도시의 생태적 품질을 끌어올리는 핵심 수단이며, 앞으로의 도시 계획에서 필수적 요소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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