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1. 조경학 기반 경관 해석학의 이론적 기초
경관 해석학의 개념과 조경학의 연계
경관 해석학(Landscape Hermeneutics)은 공간과 경관을 단순한 물리적 배경이 아닌 '해석 가능한 텍스트'로 간주하는 철학적 접근이다. 해석학(Hermeneutics)은 본래 고전 문헌 해석에서 출발했으나, Gadamer(1960), Ricoeur(1984) 등 철학자들에 의해 인간의 이해 작용 일반에 대한 이론으로 확장되었다. 조경학에서는 이러한 해석학을 공간 설계 및 경관 분석에 적용하여, 장소(place)를 구성하는 다층적 의미체계를 파악하고 해석하는 도구로 발전시켜 왔다.
경관 해석학은 ‘보는 경관’에서 ‘읽는 경관’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유도한다. 이는 Kevin Lynch의 시각적 도시 이미지 이론을 넘어서, 인간의 기억, 정체성, 문화적 인식까지 포함하는 총체적 인식체계로의 확장을 의미한다. 조경 설계에서 이러한 경관 해석학은 공간의 내러티브 구조를 설계하고, 이용자와 경관 간 상호작용을 심화시키는 방법론으로 채택되고 있다.
경관 해석학의 세 가지 층위
경관 해석학은 보통 세 가지 층위로 설명된다:
- 표면적 해석(Surface Interpretation): 시각적으로 관찰 가능한 형태, 구조, 식생 등 물리적 요소 중심 해석
- 맥락적 해석(Contextual Interpretation): 역사, 문화, 사회적 배경 등 장소가 지닌 맥락에 대한 해석
- 상징적 해석(Symbolic Interpretation): 경관이 상징하거나 암시하는 의미의 해석, 예: 민속신앙, 신화, 지역 서사 등
이러한 층위들은 조경 설계자가 경관을 분석하고 설계 방향을 설정하는 데 핵심 기준으로 작용한다. 경관을 ‘읽는’ 능력이 곧 장소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설계 전략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2. 조경학에서 본 장소 경험과 감각 인지 구조
감각 중심의 장소 인식 메커니즘
장소 경험(place experience)은 인간이 특정 공간을 감각적으로 인식하고 정서적으로 연결짓는 일련의 심리적·인지적 작용을 말한다. 이 개념은 환경심리학(Environmental Psychology)과 조경학의 교차점에서 활발히 논의되어 왔으며, 특히 Gibson(1979)의 ‘어포던스(affordance)’ 이론은 사용자가 공간을 어떻게 감각적으로 탐색하는지를 설명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조경 설계에서 이러한 감각 인식 구조는 공간 체험의 깊이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인간은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 촉각, 후각, 미각 등 다중 감각을 통해 장소와 상호작용하며, 이러한 복합 자극이 장소에 대한 ‘기억’을 생성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즉, 감각적 설계는 장소의 물리적 구성 요소와 인간의 지각 메커니즘을 연결하는 매개다.
장소 경험 강화 전략
장소 경험을 강화하기 위한 대표적 조경 설계 전략은 다음과 같다:
- 다감각 자극 요소 도입: 예: 물소리, 향기 식물, 다양한 재질 포장재
- 심리적 안전감 조성: 경관에서의 피난처 구조, 프라이버시 영역, 개방감 조율
- 경관 리듬과 동선: 이동 경로에 따라 리듬 있게 변화하는 경관 연출
아래 표는 장소 경험 요소를 감각별로 구분한 구성 예시이다.
감각 유형 경관 요소 예시 강화 전략 시각 경관 색채, 수직·수평 구조, 계절 변화 테마식재, 색채 조화 계획 청각 물소리, 바람 소리, 새소리 등 자연음 수경시설, 음향 공간 계획 촉각 나무의 질감, 포장재의 표면, 벤치 재질 등 텍스처 변화, 사용자 접촉 빈도 고려 후각 허브 식재, 꽃향기, 토양 냄새 등 계절별 향기 계획, 식재 믹싱 이러한 다감각 자극 전략은 공간을 단순한 기능적 장소가 아니라 '경험의 장'으로 확장시키는 데 결정적이다. 사용자는 감각을 통해 장소와 정서적 연대감을 형성하고, 이는 장소 정체성의 핵심 기반이 된다.
3. 조경학 기반 경관 구조와 내러티브 공간 구성
공간 해석 구조와 내러티브 설계
경관 구조(Landscape Structure)는 공간 구성 요소 간의 관계성, 배치, 흐름 등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경관 해석학과의 결합을 통해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내러티브 설계(Narrative Design)로 확장된다. Richard Weller(2008)는 조경 설계에서 ‘내러티브의 전략적 배치’를 통해 사용자가 공간을 해석하는 방식을 유도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설계자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경관의 인지성과 체험성을 증대시킨다고 분석했다.
장면 구성과 사용자 여정 설계
내러티브 공간은 크게 ‘장면(scene)’, ‘전환(transition)’, ‘클라이맥스(climax)’라는 세 가지 구성요소로 정리할 수 있다. 조경 설계에서는 이를 물리적 장치와 동선 구성으로 구현한다. 예를 들어:
- 장면(Scene): 특정 테마 또는 기억을 환기시키는 공간 단위 (예: 추억의 정원)
- 전환(Transition): 장면 간 이동을 부드럽게 연결하는 동선 혹은 분위기 전환 장치 (예: 수목 터널, 보행브리지)
- 클라이맥스(Climax): 가장 인상 깊은 상징적 공간 (예: 전망대, 기념광장)
이러한 구성은 공간을 영화처럼 연속된 서사로 인식하게 만들며, 사용자의 동선과 감정을 효과적으로 조율한다.
4. 조경학에서의 해석학적 설계 사례 분석
국내 사례: 수원 광교 호수공원
광교 호수공원은 ‘기억의 경관’을 설계 주제로 삼아 조성된 대표적 사례다. 이곳은 기존의 자연 생태계를 보존하는 동시에, 과거 지역의 문화자산(옛 마을, 수리시설 등)을 복원·시각화하여 경관 내러티브를 형성하였다. 방문자는 단순히 경치를 ‘보는 것’을 넘어, 마치 시간을 거슬러 ‘읽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된다.
해외 사례: 독일 뒤스부르크 노드파크
폐산업시설을 재생한 뒤스부르크 노드파크(Duisburg Nordpark)는 경관 해석학이 공간 설계에 반영된 대표적 사례이다. 고철, 연통, 폐철도 등의 산업 잔해를 보존하면서도, 그 구조에 새로운 서사를 덧입혀 시민 체험 공간으로 재구성했다. 이 과정에서 ‘해석 가능한 잔해’는 상징적 요소가 되었고, 도시 산업의 기억을 경관의 일부로 재편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경관 해석학이 단순한 이론이 아닌, 실제 공간 설계에서 어떻게 ‘장소 경험’을 구체화시키는지를 잘 보여준다.
5. 조경학에서 경관 해석학과 장소 경험의 통합 전략
설계자의 역할 변화와 해석자의 정체성 부여
경관 해석학은 설계자의 역할을 단순한 디자이너에서 '스토리텔러이자 번역자'로 확장시킨다. 공간의 맥락과 상징을 읽고 이를 설계 언어로 재해석하여 이용자가 경험할 수 있도록 ‘번역’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과정에서 설계자는 지역사회, 사용자, 역사, 생태 등 다양한 해석 주체들의 목소리를 통합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통합적 설계 접근법
경관 해석학과 장소 경험을 통합적으로 반영한 설계는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갖는다:
- 서사 기반 기획: 초기 설계 단계에서부터 공간 내러티브 구성 반영
- 감각-정체성 연계: 감각 자극이 장소의 정체성과 연결되도록 계획
- 사회적 의미 수렴: 사용자와 공동체의 경험이 반영될 수 있는 구조 설계
이러한 통합 접근법은 지속가능한 조경 설계와도 연결된다. 정체성과 경험이 강화된 공간은 이용자의 책임감 있는 사용을 유도하며, 유지관리 측면에서도 지역 커뮤니티의 참여를 확대하는 기반이 된다. 조경학에서 경관 해석학은 더 이상 부가적인 분석 도구가 아닌, 장소 정체성과 감각적 경험을 동시에 증진시키는 핵심 이론으로 작동하고 있다.
'조경학 이론과 설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경학 기반 수변공간 디자인과 시각 축 조망 계획 (0) 2025.04.17 조경학에서 본 시간 기반 경관 변화 설계 전략 (0) 2025.04.16 조경학 기반 스토리텔링 경관 조성과 정체성 설계 (1) 2025.04.16 조경학에서 분석하는 공공예술과 경관 통합 설계 전략 (0) 2025.04.15 조경학 시각에서 본 장소 고정성과 경관 유지 전략 (0) 2025.04.15